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1월 4일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출처: 뉴스1)한 국가정보원 요원에게 '국정원의 핵심 역할이 뭐냐'고 묻자 "결국은 북한"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해외 정보기관 인사들과 만나도 국정원 요원들에게 궁금해하는 건 결국 북한의 동향이란 겁니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이종석 원장이 임명된 배경도 '대북 전문가' 이력과 무관치 않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을 설계했던 이 원장, 노무현 정부에서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까지 역임했죠. 10년 넘게 이재명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외교안보 멘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북한 전문가인 이 원장, 북한보다 다른 분야에서 더 성과를 내고 있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올해는 꽉 막힌 남북 관계를 뚫을 해결사 역할도 해낼까요?
평양 지도 떼고 세계 지도 걸어
국정원장 집무실에는 원래 평양 지도가 크게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원장, 취임 직후 평양 지도를 떼버리고 세계지도로 교체했다고 하는데요.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 원장 스스로가 자신이 북한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해외 정보 파트를 진두지휘하는 국정원장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성과도 눈에 띕니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한국인 대학생 사망사건의 핵심 인물을 검거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로맨스스캠 범죄 피의자 136명을 검거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최근 이 대통령이 캄보디아 사태에 대해 "한국인을 건들면 패가망신, 빈말 같습니까"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는데요. 캄보디아 사태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국정원이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 대응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죠.
지난해 9월 해외 신용카드 정보를 악성앱으로 탈취해 국내 카드사로부터 30억 원 상당의 허위매출을 일으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상 거래 징후를 경찰에 알린 것도 국정원이었습니다.
이 원장이 취임 6개월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낸 비결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조직 안정을 우선시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귀띔했습니다. 과거 국정원처럼 정권 교체 이후 주요 간부들을 전원 물갈이한 것이 아닌 '일 해본 사람'을 중용한 게 주요했다는 겁니다.
그중 해외 정보를 맡는 1차장 자리에 이동수 전 국정원 해외정보국 단장을 앉힌 것도 이 원장의 인사 셈법 중 하나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북한 실무자 질책 대신 기다려주기
이 원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포용 정책인 '햇볕정책'의 설계자였습니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대통령 특별수행원에 포함돼 평양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고요.
취임 초만 해도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이 원장 지시에 따라 국정원이 대북 방송을 끊자, 북한도 방해 전파 송출을 중단한 겁니다. 화만 내던 북한이 오랜만에 내놓은 화답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죠.
이 원장과 노무현 정부 NSC에서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면 반나절 안에 보고서를 완성하게 하고, 실무진 선에서 미진한 부분이 보이면 강한 톤으로 질책하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물"이라고요.
그런데 국정원장으로서 이 원장의 모습은 조금 달라졌다고 합니다. 북한 담당 실무진들을 질책하기보다는 '차분히 기다리겠다'는 자세를 보였다는 건데요. 과거와 달라진 북한의 태도와도 무관치 않겠죠.
이 원장은 남북 관계 개선을 두고 취재진에게 "군사적 긴장 고조를 완화하는 게 중요하다. 우발적 충돌을 막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원장은 취임 초 본인 업무 중 북한 업무 비중은 5% 정도로 유지했다고 합니다. 우선은 산적한 대내외 업무에 집중하고 있지만, 언제든 기회만 되면 국정원 능력의 100%를 북한에 쏟고 싶은 게 이 원장의 속마음일 거란 관측도 나옵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9차 당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국정원 내부 분위기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원장이 과거 NSC에서 보였던 '불같은 모습'이 재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자주파도 동맹파도 아니다"라지만…
현 정부에서 대북정책 노선을 놓고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도 계속 부각되고 있죠. 동맹파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현재 NSC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고 이 원장도 NSC 핵심 멤버로 참여 중입니다. '자주파'인 이 원장은 지난해 청문회에서 "자주파도 동맹파도 아닌 실익을 추구한다"고 항변했지만, 갈등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NSC 내부 관계자는 "국정원과 국가안보실은 역할이 달라 직접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고 반박합니다. 이 원장이 위 실장과 직접 논쟁을 펼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다만 이 원장이 같은 자주파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강조하는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해 NSC 내부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자주파 두 원로의 입김에 NSC에선 더 이상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한 이견이 공개적으로 나오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원장이 노무현 정부 NSC 사무차장이던 당시 미국과 협상해 이라크 파병 규모를 절반 정도 축소했었죠. 자주파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이 원장은 회고록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1만2500명 감축 계획을 통보했던 상황을 회고하면서 "장기판의 졸 생각이 났고, 아무리 힘들어도 이런 일방적 관계는 바꿔야 한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과거부터 한미동맹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입장을 내비쳐 왔습니다. 이러한 이 원장의 기조가 현 NSC 내부 기조와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한 정부 관계자는 전했는데요. 결국 미국과의 협력이 우선이냐, 북한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냐 하는 '동맹파 자주파 논쟁'은 언제든 다시 불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10년 넘게 인연 이어온 '대통령의 멘토'
이종석 국정원장이 지난 2023년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단식 투쟁 천막을 방문해 응원을 전하는 모습. (출처: 뉴시스)이 원장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여파로 그해 12월 통일부 장관에서 사임했습니다. 남북 경제협력 자금이 북핵 개발 자금으로 전용됐다는 비난이 쏟아진 데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난 겁니다. 재야에 머물던 이 원장은 약 10년 뒤 현 대통령인 이재명 성남시장 옆자리에 서게 됩니다.
2016년 4월 이 원장은 성남시 남북 교류 협력 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성남시장은 이 대통령이었습니다. 통일부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 지자체가 만든 위원회의 부위원장이 됐다는 소식은 당시 외교안보가를 술렁이게 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경기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2019년 출범한 '경기도 평화정책자문위원회'에서 이 원장은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대통령과 함께 평화 로드맵을 구상했습니다. 2022년 20대 대선 당시에도 외곽조직인 '민주평화광장' 공동대표였고, 이번 21대 대선에서도 후보 직속 '글로벌책임강국위원회'의 좌장을 맡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 남북교류협력위 출범식에 나서 "평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했고, 민주당 당 대표 시절에도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외쳤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는 것이 낫다는 지론은 대통령이 된 지금도 여전합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 원장과 함께 구축한 평화적 대북관이 대통령에게는 여전히 깊게 박혀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정부 부처 중 가장 먼저 업무보고를 받은 곳도 이 원장의 국정원이었던 걸로 전해집니다.
이 원장은 "국정원은 대통령에게 팩트 체크를 자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국정원이 해외 범죄 대응에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작 기대가 쏠리는 '남북 대화'는 여전히 꽉 막혀 있죠. 정부 당국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원장이 애가 많이 탈텐데 본인 스스로 마인드컨트롤 중일 것"이라고요.
'대통령의 멘토'이자 '대북 전문가'인 이 원장, 올해는 전문성을 발휘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도 성과 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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