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별세했습니다. 향년 100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 소재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부고를 전한 카터 전 대통령의 차남인 칩 카터는 사인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역대 최장수 미국 대통령 기록을 가진 인물로 기록됐습니다.
1924년 10월1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난 카터 전 대통령은 1963년 민주당의 조지아주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1971년 조지아 주지사에 당선했고, 1976년 대권 출사표를 던져 공화당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을 꺾고 백악관에 입성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으로 1977~1981년 4년 동안 백악관을 지켰습니다.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해 '재선 실패 대통령'으로 퇴임했습니다.
그런 그가 재평가를 받게 된 건 퇴임 후 행보 때문입니다.
그는 1982년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와 함께 비정부기구 '카터 센터'를 설립해 지구촌 분쟁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오슬로 협정' 중재(1993년), 우간다-수단 분쟁 조정(1999년), 베네수엘라 대통령 소환투표 감시(2004년) 등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힙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한국과의 인연도 많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79년 한국을 찾아 박정희 전 대통령과 회담했습니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를 적극 추진했지만 미국 국방부와 의회의 반대로 실현하지는 못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북핵 위기가 불거졌을 때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본명 김성주) 전 북한 주석과 회담했습니다.
당시 양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합의했지만 김 전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회담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해비타트(주거 빈건 퇴치를 위한 집 짓기) 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2001년 한국을 방문했다가 충남 아산에서 '사랑의 집 짓기 사업' 자원봉사에도 직접 참여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고메스를 석방하기 위해 두 번째로 방북했습니다.
이듬해에는 국제사회 원로 모임인 '디 엘더스' 회원들과 다시 북한을 찾았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8월 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91세이던 그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암 완치를 선언하며 건강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흑색종 피부암에 걸린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카터 센터를 통해 임종간호를 받으며 여생을 보낼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부인 로잘린 여사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달 들어 카터 전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다음 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에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