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배신자' 프레임은 무섭습니다. 특히 보수 정치인에겐 더 그렇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배신자 프레임에 갇혔던 유승민 전 의원은 대구·경북(TK) 지역 등 전통적 여당 지지층으로부터 오랜 시간 외면 당했습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손절하지 못하는 이유도 아버지(대통령)가 아무리 큰 잘못을 했더라도 큰 형(여당)은 효를 다 해야한다는 작은 아들(지지층)의 감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최고위원 사퇴‧관저 앞 집회 참여에 “배신자” 비판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서울 한남동 관저 앞으로 몰려간 국민의힘 의원 45명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장동혁 의원입니다.
장 의원은 친한(친한동훈)계 핵심이었다가 윤 대통령 탄핵안 소추 직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수석최고위원직을 내던지면서 한동훈 지도부가 붕괴됐습니다. 당시 한 전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란 낙인이 찍혔습니다. 지난 6일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관저를 방문한 직후엔 장 의원 SNS에 한 전 대표 지지지들로부터 "후원금을 돌려달라" 등 비난 댓글도 쏟아졌습니다. 한 전 대표의 지지자들에겐 장 의원의 선택이 2차 배신으로 받아들여진 겁니다.
장동혁 "세 군데서 욕 먹었지만… 체포영장 부당"
장 의원도 이런 비판, 모르지 않습니다. 가장 고민한 사람일 것입니다. 장 의원은 "관저 앞에 가서 세 군데서 욕을 먹은 건 나 뿐일 것"이라고 주변에 말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관저 앞에 간 것 자체에 대해 비판하는 진보 지지층, 친윤으로 갈아탔냐는 한 전 대표 지지층의 싸늘한 시선, 그리고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끌어내렸다고 보고 한 전 대표를 증오하는 보수 강성 지지층입니다.
이런 비판을 감수하고 장 의원이 관저 앞으로 간 까닭은 뭘까요. 장 의원은 지난 6일 채널A에 "체포 영장이 위법하고 부당하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는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서란 겁니다. 보수 지지층 여론도 살펴야한다는 ‘신념’도 작용했다는데요. 그러면서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있을 때 또 관저 앞에 또 갈 것이란 뜻도 밝혔습니다.
당내에선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계엄 해제 의결에 참여했고 윤 대통령과 각 세웠던 한 전 대표 전 측근인 장 의원이 참여하면서 관저 앞 집회의 성격이 달라졌다고요. 친윤·영남 의원들의 대통령 지키기가 아니라, 계파를 초월해 부당한 공수처의 영장 집행을 비판한 행동으로 부각됐다는 겁니다.
하지만 친한계 인사들은 관저 앞으로 갔던 장 의원의 행보에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친한계 정성국 의원은 오늘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지금까지 한동훈 대표를 지지했던 많은 분들 안에 장 의원도 같이 들어있다”며 “그런 정도의 마음은 좀 헤아려주면서 앞으로 정치 행보를 하셔도 안 좋겠나”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장 의원의 최고위원 사퇴를 놓고도 당내 평가는 엇갈립니다. 한 초선 의원은 "장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더라도 한 전 대표가 두드려 맞았던 의원총회 자리가 아니라 '한 전 대표와 상의하고 주말 새 고민해보겠다'고 했다면 모양새가 더 나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중도 성향은 한 의원은 "장 의원이 이미 오래 전부터 한 전 대표에게 실망한 걸로 알고 있다"며 "주요 국면마다 주변 말을 듣지 않고 상의 없이 본인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한 전 대표와 함께하면서 좌절감이 쌓였을 것"이라고 감쌌습니다.
정치는 결과로 말합니다. 장 의원이 관저 앞에 간 이유도 중요하지만 장 의원의 행동으로 인한 파급 효과를 봐야합니다.
장 의원의 이번 결정이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앞으로 장 의원의 행보에 달려있을 겁니다. 단순히 정치적 도의를 저버리고 시류에 편승한 건지, 배신자 프레임이 굳어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정치적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인지 지켜볼 일입니다.